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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자유주의는 필요없다, 우리에겐 이미 자유주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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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미국 역사세계역사

01/07/2019

[Translated by Haeng-Bum Kim] (김행범)]

최근 몇 년,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 neoliberalism)란 단어를 여러 용도로 쓰는 온갖 문헌들이 나타났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대체로 그것은 교조주의적인 좌파들이 중도좌파 및 자유시장 옹호론자들을 경멸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 용어를 경멸적 방식으로 사용하는(거의 모두가 이런 식이다) 사람들은 세계 모든 빈곤과 불평등이 신자유주의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비록 그것을 주장하는 자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에겐 대개 신자유주의자란 바로 “자본가”(capitalist)를 의미한다. 예컨대, 경제학 저술가인 스티븐 펄스타인(Steven Pearlstein)과의 새 인터뷰 속에서 신자유주의는 명백히 강성의 자유지상주의(hard-core libertarianism)의 한 유형이며 “급진적인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radical free market ideology)일 뿐이다.1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단지 몇몇 특이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신봉되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자들에는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보다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 예컨대, 도널드 트럼프, 빌 클린턴, 토니 블레어, 테레사 메이, 랜드 폴 및 에마뉴엘 마크롱이 포함된다.2

우리를 ‘신자유주의자’라 하자, 그게 자랑스러운 이름인가?

신자유주의자라는 용어에 나쁜 함의들이 깔려 있기 때문에, 자신들을 묘사하는데 그 용어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 및 자유 시장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는 조직들 및 저술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신자유주의자”(neoliberal)라고 밝히는 불행한 경향이 최근 몇달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란 용어를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대한 혹독한 비판자들이란 사실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그들은 자본주의를 좋아하지 않으며, 그것을 좀 덜 보기를 원한다. 그들은 더 많은 사회주의와 더 많은 사회 민주주의를 보기 원한다. 가급적 속히 말이다.

이 점을 감안하여, 몇몇 사람들은 이 점을 감안하여, 애초부터 그런(those) 사람들이(역주: 즉 애초부터 급진적인 자유 시장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신자유주의를 증오한다면 그건 나쁜 일이 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하여, 자유시장주의를 지향하는 메르카투스 센터(Mercatus Center)3 의 스탭 한 사람이 쓴 “실제로는 ‘신자유주의’는 멋진 거야”(Actually, ‘Neoliberalism’ Is Awesome)와 같은 제목의 논문들을 보게 된다. 더 잘 알려진 것으로는, 애덤 스미드 연구소에서 나온 “신자유주의자로 커밍아웃 하기”(Coming Out as Neoliberals)라는 제목의 논문인데 거기서 저자인 샘 바우만(Sam Bowman)은 재산권 보장을 어느 정도 선호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신자유주의자”라고 밝힐 것을 권고한다.

이를 그대로 답습한 다른 논문들도 나왔는데, “뉴질랜드 납세자 연합”(New Zealand Taxpayers’ Union)의 조던 윌리엄스(Jordan Williams)가 쓴 글이 그런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의 요지는 이것이다: “당신은 자유를 지지하고 너무 높은 세금을 반대하는 점잖은 사람인가? 그렇다면 친구여, 당신이 바로 신자유주의자인 거야”

그러나 이런 태도는 세 가지 이유로 인해 잘못된 것이다.

첫째: “신자유주주의”라는 건 너무 모호한 개념이다.

힐러리 클린턴 및 론 폴은 신자유주의 반대자들로부터 신자유주의자인 것으로 묘사되어 왔는데 토니 블레어와 도널드 트럼프도 그렇게 묘사되어 왔다. 그러나 만약 당신의 이념 용어가 이 모든 사람들을 한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당신의 용어는 썩 유용한 것이 아니다.

맞다, 완고한 레닌주의자들이 보기에는 클린턴이나 폴은 다 퇴폐적인 부르주아지들일 뿐이며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 몰입해 있다고 간주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빌 클린턴도 론 폴도 베네수엘라와 같은 경제정책은 좋아하지 않으므로 강성의 “평등”(equality) 옹호자들에 의하면 그 둘은 다 신자유주의자들로 비난받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특정 정책 부분들에서 너무나 완전히 상이하기 때문에 그들을 한 범주 안에 넣는 것은 거의 무용하다. 만약 신자유주의자의 정의가 단지 “공산주의자가 아닌 것”이라면 우리는 더 좋은 다른 용어를 찾아야 할 것이다.

둘째: “자유주의”(즉 “신(新)”이 붙지 않은)가 더 좋은 개념이다.

미국인들 및 (그리고 그보다는 덜하지만) 캐나다인들은 “자유주의적”(liberal)이란 용어의 의미에 자주 혼란을 겪지만, 수많은 학식 있는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그 용어 및 그것이 묘사하는 이념적 운동을 정확히 알고 있다.

대부분의 세계에서, 자유주의는 우리가 미국 혁명가들, 자유 무역, 전쟁에 반대하는 맨체스터 학파(Manchester school) 및 프레데릭 바스티아(Frédéric Bastiat)와 같은 프랑스 자유주의자들과 계속 연관시켜온 이념이었다. 물론 그것은 또한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칼 멩거와 같은 오스트리아 학파의 자유 시장경제학자들의 이념이기도 했다.

역사학자 랄프 레이코(Ralph Raico)는 이 운동을 이렇게 정의했다: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란 사유재산권, 제약없는 시장경제, 법의 지배, 종교와 언론의 자유 및 자유 무역에 토대한 국제 평화를 옹호하는 이념을 가리키는데 사용되는 용어이다. 1900년경에 이르기까지는, 이 이념은 보편적으로 그냥 자유주의(liberalism)로 알려졌었다.”

우리가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라 인정할 수 있는 모습으로 그 운동이 나타난 것은 적어도 “17세기 영국의 수평파”(Levellers of 17th England)까지 거슬러 올라간다.4 그 운동은 나중에 미국의 독립선언 및 권리장전(Bill of Rights) 속에 요약된 많은 정치적 권리들을 도입하는데 기여했다.

이와 똑 같은 이념적 전통이 프랑스, 스위스, 영국 및 심지어 폴란드의 자유주의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온 유럽을 휩쓴 자유 시장, 자유 무역, 자유 이주의 개혁들은 유럽의 급속한 자유화의 산물이었다.

물론 많은 다른 이념적 운동처럼 자유주의도 성쇠를 거듭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는데, 그 부분적 이유는 자유주의가 시도되었던 곳에서는 어디든지 경제적 번영을 가져오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에 관련된 논문: “왜 시장주의는 절반만 작동해도 효과가 나는데 비해 사회주의는 그러지 못한가?”를 참조하라.]5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유주의를 여러 유형의 보수주의(conservatism)와 혼동하지만 자유주의는 개인 및 시민 사회는, 정부가 만든 계급 및 정부가 지탱하는 엘리트를 필요로 하지 않고서도, 번영할 수 있다고 본다.

자유주의자들은 만들어지고, 계획되고, 지도받거나 혹은 위에서 강제를 가하는 사회에 반대한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를 믿는데 그것은 가정, 개인, 기업 및 공동체의 집단들과 같은 셀 수 없이 많은 분권화된 집단으로부터 자라난다. 보수주의가(대개의 권위주의 이념들처럼)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스스로를 다스릴 능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따라서 정치인들에게서 나오는 “리더십”(leadership)을 필요로 한다는 시각을 취하는 반면에, 자유주의자들은 사람들은 내버려두어도 자신의 삶을 평화롭게 영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관점에서는 강압이 필요한 유일한 사람들은 폭력적인 범죄자들뿐이다.

셋째: 신자유주의는 흔히 자유주의와 반대(opposite)이다

그런데도 괴이하게,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가 거부하는 많은 것들을 수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자유주의자들(liberals)은 “신자유주의자”(neoliberal)라는 이름을 감당할 책임 하에 놓여있다.6

결국, 유럽연합(Europe Union), 세계은행(World Bank) 및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들은 모두 다 펄스타인이 “급진적 자유 시장 이념”(radical free market ideology)라 부른 신자유주의의 일부 혹은 그 집합이라고들 한다.

사실은, 연방준비위원회(Federal Reserve) 같은 중앙은행들을 포함하여 신자유주의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이 기관들은 자유시장적 자유주의자들이 그리는 자유방임적 세계와는 완전히 배치된다.

이 모든 범세계적인 “신자유주의” 기구들은 조세 수입에 의존하거나, 정부 보조를 받는 독점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들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형태의 정부 간섭, 조작 및 강제에 의존한다.

이것들은 자유주의자들이 성취하고자 해 왔던 모든 것들과 완전히 배치된다.

[이완 관련된 논문: 라이언 맥마켄이 쓴 “신자유주의에 대한 미제스의 반대”(Mises Against the Neoliberalism)를 참조하라]

참으로,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그가 살던 시대의 이 같은 조직들에 반대했는데 그 정확한 이유는 그것들은 자유주의적인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고든(David Gordon)은 이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미제스에게 국제 조직의 구상은 자유시장을 고양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획된 것이다. 미제스가 이러한 계획들이 국가주의 풍토 속에서는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그것들 대부분을 포기했다. 예컨대, 그는 『전능한 정부』(Omnipotent Government)에서 '현 상황에서 국제무역 기획을 위한 어떤 국제기구는 극도의 보호주의(hyper-protectionism) 사고에 매여 있는 정부들의 대표들 회의체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기관이 국제 무역 제고에 진정성있고 지속적인 뭔가를 기여하는 입장이 될 거라고 가정하는 건 환상이다.'"

미제스는 또한 그의 생애 상당 부분을 중앙은행 및 중앙식 은행 운영을 반대하는 것에 몰두했다.

신자유주의자의 비판자들이 신자유주의가 급진적 자유방임(laissez-faire) 이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또 흔히 주장되어 온 것처럼 미제스 그도 신자유주의자였다고 지금 주장하는 것은 자유방임의 진정한 이념이 무엇이었던가를 무시한 것이다(역주: 예컨대, 아일랜드 대통령이던 마이클 히긴스는 미제스나 하이에크를 ‘신자유주의자’라고 제멋대로 규정한 바 있었는데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명명이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겠다는 자들이 이렇게 미제스와 하이에크를 자의적으로 신자유주의자의 범주에 넣고 비판함은 잘못된 것이다. 미제스와 하이에크는 당연히 19세기의 ‘자유주의자’이지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실제로는 단지 과거의 중상주의(mercantilism)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며, 거기서는 정부가 통제하는 독점기업들이 국가가 후원하는 정책 의제들을 여타의 사람들에게 부과한다. 바꾸어 말하면,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가 늘 무너뜨리고자 노력해 왔었던 바로 그것이다.


(글쓴이) Ryan McMaken

라이언 맥마켄은 ‘미제스 와이어’(Mises Wire)의 선임 편집인 및 ‘오스트리아학파 학자들’(The Austrian)의 편집인이다. 콜로라도 대학에서 경제학박사 및 정치학 박사를 받았으며 콜로라도 주택부의 경제분석가(2009-2014)로 일했다. 『공산주의 카우보이들: 부르주아와 서구판 민족 국가』(Commie Cowboys: The Bourgeoisie and the Nation-State in the Western Genre)의 저자이다.


Haeng-Bum Kim is professor of public choice at Pusan National University,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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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역주) 펄 스타인은 워싱턴 포스트 신문의 칼럼니스트이며 조지 메이슨 대학의 공공행정 교수이다. 미국 자본주의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 ‘Can American Capitalism Survive?’라는 책의 저자인 그는 2019.1월 초의 인터뷰에서, 급진적인 ‘자유 시장’, 곧 흔히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이념 때문에 자본주의의 윤리적 토대가 붕괴되었다고 본다. 여기서 그는 ‘신자유주의’를 급진적인 ‘자유 시장’ 이념과 동일시했다. 
  • 2. (역주) 버니 샌더스는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지명전에 나왔던 사회주의 정치인이다.
  • 3. (역주) Mercatus Center는 미국 조지 메이슨 대학의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연구소이다. 
  • 4. (역주) 수평파 Levellers 란 청교도혁명 후 올리버 크롬웰이 통치하던 시기에 소시민, 직공, 자영농민, 소작농민 등이 귀족이나 왕이 아니라 인민 중심의 보통선거, 토지의 균등한 재분배와 같은 급진적인 평등을 통한 공화정을 요구하던 사람들이며 그 지도자는 존 릴번. 부르주아 계급 중심인 의회파로서는 이들은 왕당파만큼이나 기피할 대상이었기 때문에 결국 청교도주의자들에 의해 진압되었다. ‘수평파’라는 이름은  인위적으로 개인들의 재산을 균등하게 만들려 한다는 기계적 평등주의자들이라는 비난의 의미로 그 반대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 5. (역주) 사회주의가 적용된 북한, 소련, 중국, 베네수엘라 경제는 빈곤과 파산만을 결과했다. 이 명백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완강한 좌파들은 거기서 사회주의가 완전히 적용된 것이 아니며 ‘완벽히’ 사회주의가 적용되었더라면 달라졌을 거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시장 자유주의 이념은 그 일부만 적용되어도,  사회주의보다 더 나은 경제성과를 가져온다는 요지의 논문이다. 
  • 6. (역주) 즉,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와는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치 자유주의인 것처럼 표방되는 바람에 진정한 자유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까지 변론을 해야 하는 잘못된 부담을 지고 있는 셈이다.

Ryan McMaken (@ryanmcmaken) is a senior editor at the Mises Institute. Send him your article submissions for Mises Wire and The Austrian, but read article guidelines first. Ryan has degrees in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from the University of Colorado, and was the economist for the Colorado Division of Housing from 2009 to 2014. He is the author of Commie Cowboys: The Bourgeoisie and the Nation-State in the Western Gen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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