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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지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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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2018Llewellyn H. Rockwell Jr.

[Translated by Sooyoun Hwang (황수연 역)]

≪자유 시장(The Free Market)≫ 24, no. 7 (2004년 7월)

반(反)시장 좌파의 심리가 수수께끼일 수 있지만, 더욱더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은 반시장 우파의 사고방식이다. 옛날부터 어떠한 사회주의자만큼이나 많이 시장을 두려워하는 토지 균분론자들(agrarians), 중세 찬미자들(medievalists), 및 민족주의자들(nationalists)과, 무엇보다도 더, 신보수주의자들(neoconservatives)이 있다. 그들의 비판은 다르지만, 모두는 경제학이 정책 상상력(policy imagination)에 부과하는 제한들에 관해 불평한다. 사실상, 그것은[그들이 그 제한들에 관해 불평한다는 것은] 경제학의 장점들 중 하나다.

토지 균분론자들이나 중세 찬미자들에 의한 현저한 탈취(eminent takeover)의 위험은 없으므로,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를, 특히 그것의 두 핵심 창시자인 어빙 크리스털(Irving Kristol)과 윌리엄 F. 버클리 주니어(William F. Buckley, Jr.)의 시각에서, 고찰해 보자. 건전한 경제학과 세계 경제에 대해 가장 당면한 위협이 된 것은, 그저 그들이 정치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리버테리언 이론(libertarian theory)으로부터의 이러한 이탈이다.

네오콘들(neocons)이 자유와 평화를 거부하는 이유는 자기들이 시장 지향적 사고의 틀을 지적으로 지루하다고(boring) 여긴다는 점―네오콘들과 그들의 시각에 관한 약간의 예비지식 후에 역점을 두어 다룰 가치가 있는 이의―이라고, 그들은 최근에 밝혔다.

버클리는 1950년대 이전의 구우파(Old Right)에서 냉전의 신우파(new right)로의 과도적인 인물이었다. 최초의 신보수주의자로서, 냉전의 초기에 발생한 전쟁과 평화의 양립 불가능한 관념들 사이의 구분을 감출 지적인 해석을 하여간 제공한 사람은 그였다.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한 것같이 보이게 한, 즉 국내 자유와 자유 무역을 유지하면서 (그의 말로) “우리나라 안에 전체주의 관료제(totalitarian bureaucracy within our shores)”를 세운, 사람은 그였다.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리버테리언들(libertarians)은 자유와 소유의 지지를 위해 모였다. 그들이 일시적인 조치로서 군비 증강을 묵인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평화를 문명의 목적과 기초로 보았다. 대조적으로, 버클리는 제국적인 외교 정책의 창안을 옹호했고 전쟁을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정책 목적으로 보았다―이것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가 지지한다고 주장했을 시장질서와 명백하게 양립 불가능한 비전이다.

버클리가 자기의 지적 근원을 구우파에 남겨 둔 반면에, 어빙 크리스털은 시장을 오직 장황한 유보 조항들을 가지고서만 받아들이면서 군사 기구와 세계에서의 그것의 역할을 포용함으로써 트로츠키파 좌파(Trotskyite left)에서 움직여서 빈자리를 만들었다. 어떤 경우건, 그의 상상력을 활기차게 한 것은 기업심이 아니라 미국 외교 정책과 미국 생활의 군국화였다.

이것은 제퍼슨에서 미제스에 이르는 구자유주의자들(old liberals)의 프로그램을 어디에 남겨 두는가? 자유 시장, 자유 무역, 그리고 모든 국가들과의 평화는 국가주의 의제에 봉사하도록 주문으로 불러낼 상투어들이 되는데, 국가주의 의제는, 그것의 최악의 화신에서, 세계를 관리하기를 열망한다. 유럽에서 하이에크와 미제스, 그리고 미국에서 누구보다도 초도로프(Chodorov), 멩켄(Mencken), 및 개럿(Garet)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 명확히 표현되었던, 전전형(戰前型)의 자유 성향 보수주의(freedom-minded conservatism)에 대해서는 그만하자.

정치학자 코리 로빈(Corey Robin)은 지난 1년 동안 버클리 및 크리스털과 약간의 시간을 보냈고, (2004년 5월 2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그 결과들을 자세히 썼다. 로빈 교수는 고무적인 사회 이상으로서의 자유에 대해 그들이 보이는 적개심―우리 다수가 오랫동안 알고 있었지만, 최근까지, 보수주의에 관해 비밀을 지키는 것이 최상이었던 어떤 것―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다. 버클리는 로빈에게 자기는 보수주의가 시장을 강조하는 것을 시시하다고 여긴다고 이야기했다.

그것은 “상당히 지루하게 된다,”고 버클리는 말했다. “당신이 그것을 한 번 들으면, 당신은 그 사상에 숙달한다. 당신의 생애를 그것에 바친다는 생각은, 그저 그것이 아주 반복적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소름끼친다.”

같은 식으로, 크리스털은 경제학의 목적이 세계 정치 권력이고 [세계 정치 권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역할은 무엇이 행해져야 할지에 관해 “명령하고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필요로 한다.” 로빈에 따르면, 두 사람 다 돈과 경제에 관한 관심을 하찮고 속물적인 것으로 보고, 마음의 진지한 삶(a serious life of the mind)을 활기차게 할 만큼 충분히 흥미진진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시장이 무미건조하다고 버클리가 믿고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시를 내리는 것이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이라고 크리스털이 믿는 것은 불행하다. 그러나 그들은 감정적으로 자기들에게 성취감을 주는 것에 관한 자기들의 개인적인 의견에 세상이 순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은 채 남겨 둔다. 그들이 여기서 정말 말하고 있는 것은 시장 논리가 자기들의 사고와 행동을 자기들이 좋아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그들에게 현실 생활보다 비디오 게임들을 가지고 놀게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물건을 뜨게 하는 마술사의 능력을 중력이 줄이는 것과 꼭 같이, 경제학이 어떻게 자칭 철인왕(philosopher kings)의 역할을 줄이는지에 관해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일정 타당한 점이 있다. 경제학은 심지어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들조차도 바꿀 수 없는 제어되지 않는 현실 구조의 일부이다. 경제학이 소유권 보호와 자유 교환의 틀 안에서 거의 무한한 창조적 상상력의 사용의 가능성을 밝히는 바로 그 때에, 경제학은 국가를 꼼짝 못하게 둘러싼다.

경제학은 온통 우리 주위에서 외견상 기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기업심이 어떻게 창조하는지 우리에게 말해 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실물 자원들이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모든 정부 지출이 어떤 식으로 민간 부문을 한 입 베어 먹는다는 것도 우리에게 말해 준다. 경제학은 우리에게 가격과 임금을 통제하려는 모든 시도들이 부족과 잉여에 이를 것이라는 것, 그리고 어떠한 개입도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것은 우리에게―정부가 원하는 것들과 모순되는 수많은 기타 사항들 중에서―당신이 화폐 공급을 늘리면 반드시 왜곡을 야기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정치적 관점에서, 경제학은 정치인들이 본래 하고 싶고 지식인들이 그들에게 하라고 시키고 싶은 일들을 하는 것에 대비한 일련의 제한들인 것 같다. 그래서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시장 논리에 분개하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렇지만 경제 논리는 허구가 아니다.

이 두 사람은 시장 논리가 국가에 대해 제한적이라는 것을 근거로 시장 논리를 거부한 최초의 사람들이 전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신을 둘러싼 벽들이 당신의 신체를 담고 있다고 그것들을 거부하는 것과 다소 같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일체의 벽들을 부정할 수 있지만, 그것들을 관통해 걸으려고 시도하면 불행한 결과로 끝날 것이다.

경제 논리는 다른 의미에서 지적으로 제한적이다. 당신이 시장 수단에서 멀어지는 정도로, 당신은 자발적인 행동의 영역을 떠나 강제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시장들은 “정책(policy)”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인권과 재산권을 존중하는 것의 사실상의(de facto) 결과다. 인권과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고서 시장 수단에서 멀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장들, 교역, 그리고 자발적인 행동이 문명 자체의 기초이므로, 어떤 다른 것을 잡으려고 손을 뻗치면 비문명(de-civilization)과 야수성의 지배(the rule of the brute)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식으로 이해할 때, “시장들은 좋고, 내가 그것들을 지지하고 방어하지만, 우리는 또한 세상을 흥미진진하게 하기 위해 전쟁과 명령 구조들도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적으로 무책임하다. 모순이 분명하지 않은가? 전쟁과 명령 구조들은 시장들의 아주 반대다. 당신이 둘 다 원한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사람들을 치료하고 질병의 치료법들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삶이 무미건조해지고 무사 평온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또한 질병들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병에 걸리게 할 필요도 있다,”고 말하는 의사(醫師)와 같다.

그것은 아직도, 시장들이 무미건조한가? 라는 질문을 남겨 둔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요 공헌은 경제학을 자기 이익 극대화의 영역에서 빼내어 인간 물질생활 전체의 연구로 넣은 것이었다. 경제학은 그저 주식 시장, 기업의 오고 감, 그리고 가구 재정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더더구나 그것은 탐욕의 연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물질적 존재의 전체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문학, 예술, 과학, 보건, 음악, 여가, 스포츠, 그리고 사회 안의 모든 자발적 결사들을 포함한다.

요컨대, 경제학은 인생 그 자체보다 더 지루하지도 덜 지루하지도 않다. 사회과학 지식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든 최소 요건은 그가 사회 자체를 매력적으로 여기는 것이다. 다음 희망은 그 사람이 사회가 평화롭고 부유하게 번창하는 것을 보기를 바라는 것이다. 만약 신보수주의자들이 진정으로 이것을 바란다면, 그들은 전쟁과 군국주의를 거부해야 하는데, 후자들은 시장들이 창조하는 것을 그저 눌러 부술 뿐이다. 그들은 평화와 자유의 철학자들의 편을 들어서 폭력과 파괴의 마법사들을 거부해야 한다.


글쓴이) Llewellyn H. Rockwell Jr.

루엘린 H. 로크웰 주니어는 앨라배마 주 오번 시 소재 미제스 연구소의 창립자이자 의장이고 LewRockwell.com의 편집인이다.


Sooyoun Hwang is former professor of public choice at Kyungsung University, Busa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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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e This Article

Rockwell, Llewellyn H. "Are Markets Boring?" The Free Market 24, no. 7 (July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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